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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 친구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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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돌아와 이곳 보르도 지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요즘, '흐음, 뭔가 다른데...'싶은 느낌이 있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대화도 즐겁고 음식도 맛나고 분위기도 좋다. 하지만 뭔가 아주 살짝 빈 느낌이 있다.
그냥 둬도 되는 공간이지만, 은근히 끈질기게 생각이 나서 하는 수 없이 그 이유를 찬찬히 파악해 보았다.


우선 여기 지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실용적이다. 느낌을 나누기 보다는 일상을 나눈다. 그 와중에 언어의 한계로 장님이 벽을 더듬어 문고리 잡는 식일 때도 많다.
 
학교에서 만난 비프랑스어권 친구들에게는 수업이나 교수님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그나마 프랑스인 친구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털어놓는데 몇 가지 사건은 지금 불어 실력으론 설명이 불가능하므로 그냥 패스. 예를 들어, 벨기에 비자와 관련된 지난 한 달 간의 지난한 과정은 한국말로도 설명 못하겠다. 불어로 설명하는 건 언감생심.

어제는 친구 에스텔에게 곧 나올 책 표지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제목은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인데... (흠, '서툴다'를 당최 불어로 뭐라고 해야 해..?) 음..."
한국어를 공부 중인 에스텔과 함께 사전을 뒤적여가며 '능숙하지 않지만 어쩐지 응원을 보내고 싶은'뉘앙스까지 적절히 담고 있는 불어 단어를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서투르다 = 못 한다'
이 팩트는 한국어나 불어나 모두 동의하는 것이지만
그 팩트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 바라보는 시각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나로선 짐작하기도 힘들다.
그저 설명하지 못할 것들이 점점 '빈 공간'에 쌓여가는 거다.



보르도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도 있다.
그들을 만날 때면 보란듯이 '빈 공간'에 묵혀 있던 것들을 탈탈 털어내고 속 시원히 이야기 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게 또 안된다. 그들과의 대화는 굉장히 농밀한 편인데도 압도적인 몰입은 없다.


내가 그리운 건 압도적인 몰입이다.
압도적인 몰입감이 있는 대화라.. 언제 그걸 했더라? 떠올려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나에겐 연장자가 필요하다!

이 곳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도 적고, 경험치도 적다. 그들이 내게 털어놓는 고민이나 고백은 내겐 미지의 것이 아니다. 익숙하고 이미 경험한 것들이다. 대화가 농밀할 순 있어도 의표를 찌르는 순간이 나오긴 힘들다.
'그래, 그 심정 나도 잘 알지.'하며 아는 셈 치는 태도가 문제인 것 같단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난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특별히 편애하는 데다가 위로 스물 몇 살 차이 나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 본 적은 있지만 아래로 두어살 내려가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본 경험은 없었다.

그러니 5살 10살 차이 나는 동생들이랑만 대화를 나눠야 하는 요즘, 뭔가 어리둥절 했던 것이다.
연하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특별히 모자람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세대 차이라고 부르겠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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